나는 허공에 산다.
내가 오롯이 나로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노릇과 ○○답게를 하는 하루 중 나는 불과 몇십분 나로 살것이다. 좋은 작가노릇과 좋은작가 답게까지 나로 포함해야 할까. 그렇다면 조금 위안이 되겠지만 그것이 나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한 시간이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면. 그것도 근심 걱정으로 일부 채워져 있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 열심히 했네" 라는 말이 부질없는 것인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나를 수없이 많은 나로 쪼개어 여기저기 나누어 주고, 받고 쓰고 산다.
내가 100%로 나로 살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나 "열심히 했네"만이라면 부끄럽다.
나는 나를 쪼개고 쪼개어도 그 중 나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