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의 시작은 지나간 것의 그리움을 낳게 한다.
지금 이 곳. 언젠가 떠나야 할 이곳의 정원엔 내가 좋아하는 목단이 한창이다.
막 오르는 여자의 젖 봉우리처럼 부끄럽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아름답다.
지나간. 지나갈 것의 그리움이 시작되었다.
그 목단꽃과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엄마의 말동무와 친구가 되어 주었던 마을 아주머니. 멀리 타국에서 일하러 온. 하우스에서 내내 땀흘려 일하고 덤으로 받은 야채를 나누어 먹자고 흰머리 성성한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며 ‘오빠. 먹어. 맛있어’ 하고 건네주는 이주노동자 식구들. 엄마가 놀던 엄마의 밭. 가을이면 작업실 앞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던 은행나무. 똑똑 소리를 내며 밤알을 내주던 집앞 밤나무. 향기롭고 달콤한 자두나무...
시작은 지나간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고 지나간 것의 그리움만 가져가야 한다.
사랑. 마음을 두고 가야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