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의 시작은 마음에 있다. 마음은 토양이 되어 시간의 양분을 받아 조금씩 싹이 자라면 어느덧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입으로 “시작”을 내뱉었을 땐 이미 시작은 시작되어 조금은 긴 시간이 흐른 뒤다. 마음에서 시작되어 입으로 시작을 소리 내었어도 정말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이 아니다. 나는 여러 번 그런 허영의 시작을 했다. 기운 없이 자꾸 비틀거리는 허영의 사전적 의미처럼 내 시작은 여러 번 비틀거렸고 재고 잰 다음 조금씩 앞으로 가다가 고꾸라지기라도 할까 또 멈추기를 반복했다.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내 발자국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듯, 밀려오는 파도에 사라지듯, 소리 없이 소복이 쌓이는 눈에 사라지듯 사라졌을 때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까.. 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 삶의 반을 하고 싶은 일로 채웠던 나는 참으로 막막한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잘하는 일이면 좋겠지만 그건 어쩌다 딱 한번 사본 복권에 당첨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잘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셈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남은 시간을 쓰느니 기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금 나는 허영의 시작을 끝내고 정말의 시작을 하려는 것이다.
정말의 시작은 고되다. 어쩌면 고되다. 매일 시작하여 기운 없이 자꾸 비틀거리는 허영의 시작이 쌓이면 정말의 시작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비틀거리고 고꾸라져야 한다. 시작은 시작의 결과를 재촉하여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