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쯤 Y는 베이징레지던스로 떠났다. 우리는 둘다 그림뿐이였고 넉넉치 않은 형편이였지만 해외 레지던스는 포기할수 없었다. 차를 판 300만원을 가지고 Y는 떠났다. 그 당시 나는 아버지 사업을 도와 일명 밥줌마. 알바부터 식구를 아침.점심.저녁. 끼마다 두번의 간식을 챙기는 일을 했었고 다행히 틈틈히 그림을 그릴수 있었다. 여차하면 아버지가 주시는 월급을 Y에게 부쳐야지 했었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러겠다. 그러니 아버지가 돈을 대라!! 라고라고라고는 하지 못했다.(내가 돈이 읎지 가우가 읎는건 아니니까!!) 다행히 Y는 베이징에서 전속갤러리의 지원과 좋은 컬랙터들을 만나 어려움 없이 작품에 집중할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 그림쟁이로 힘든시기를 보냈지만 Y를 처음만난 그순간부터 지금까지 작가로써의 재능이나 태도는 어느누구 못지 않다는 생각은 한번도 변함이 없다. 어쩌면 기회와 응원이 더해져 빛이 나는것은 준비된 사람들이 가질수 있는 힘인것 같다.

나는 매일 베이징으로 가고 싶었다. 한달에 한번 가고올때마다 베이징공항과 한국의 집까지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그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도 그랬고 부러움에도 그랬던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한달여를 베이징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미 작업실은 Y의 에너지로 꽉차이었다. 한 귀퉁이 이층 작는 공간에 자리를 펴고 Y랑 중국화방에서 사온 물감과 붓. 캔버스판으로 작업을 시작 했다.

 

빙고와 모모의 시작은 그러했다. 빙고와 모모는 바로 나다.